국내 잉크 전문기업인 잉크테크(Inktec)는 2005년 세계 최초로 투명전자잉크를 개발, 올해부터 이를 이용한 전자부품 생산을 시작했다. 투명전자잉크에는 전기가 통하는 은(銀)이 들어있다. 프린터로 회로를 인쇄한 뒤 열을 가해주면 화학반응에 의해 잉크에 들어있던 은 입자들이 회로를 만들어낸다.
현재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는 기판에 회로를 그린 다음, 그 부분을 깎아낸다. 깎인 부분은 다시 쓸 수 없으므로 재료 손실이 있고, 회로를 깎아낼 때 사용하는 유독 화학물질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인쇄방식으로 전자회로를 만들면 재료 손실이나 환경오염 우려가 없다. 문서 찍듯 기판 위에 바로 회로를 만들 수 있어 필름이나 종이 같은 얇고 잘 휘어지는 물질에도 전자회로를 새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교통카드에 들어가는 무선식별용 전자태그(RFID 태그) 회로 생산에 그만이다.
해외에서는 2000년부터 프린터를 이용한 전자부품 인쇄기술을 개발해왔다. 프린터에는 전기가 통하는 전도성 잉크(conductive ink)가 들어간다.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전도성 잉크는 나노잉크. 전기를 통하게 하는 금속을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 입자로 만들어 액체에 분산시켜 놓은 형태다. 금속으로는 주로 은이 사용된다.
현재 국내외에서 개발된 나노잉크는 겉으로 보면 짙은 회색을 띤다. 은 입자가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은 입자의 크기는 보통 50나노미터 정도. 입자 둘레에는 비누와 같은 성질을 띤 계면활성제들이 둘러싸고 있다. 입자들이 서로 뭉쳐지지 않고 용액 속에 잘 퍼지게 하기 위해서다. 회로를 그리고 열을 가하면 은 입자를 둘러싸고 있던 계면활성제들이 분해된다. 이후 남은 은 입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전기가 통하는 회로를 구성한다.
문제는 은 입자의 크기다. 입자가 크면 프린터 헤드의 노즐이 막히고, 회로를 인쇄한 뒤 입자를 둘러싼 물질을 없애는 데 더 높은 열을 가해야 한다. 음료수병으로 사용하는 필름 소재인 PET나 종이에 회로를 새기려면 인쇄 후 가하는 열의 온도가 섭씨 130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 온도는 아직 200도 이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투명전자잉크는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장점이다. 잉크테크 박정빈 정보분석팀장은 "투명전자잉크는 은이 입자 상태로 용액 속에 퍼져 있는 게 아니라 유기물질과 결합된 채 설탕처럼 녹아있어 은 입자 크기에 따른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국제전시회에선 은 입자 크기가 5~10나노미터까지 줄어든 나노잉크가 소개됐지만 투명전자잉크에 녹아있는 은은 그보다 훨씬 크기가 작다. 잉크가 투명한 것도 은의 크기가 워낙 작아 빛이 그대로 통과하기 때문이다. 투명전자잉크는 지난해 과학기술부의 신기술(NET) 인증을 받았으며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IR52 장영실상(국무총리상)도 수상했다.
2008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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